『천막의 자두가르를 더욱 재미있게!』 몽골 제국의 재혼

 본 칼럼은 만화 『천막의 자두가르』의 무대가 되는 땅의 역사나 문화를 연재 형식으로 소개하는 칼럼입니다. 제23막에선 소르칵타니와 귀위크의 혼담이 크게 다뤄졌습니다. 소르칵타니에게 귀위크는 조카(죽은 남편 툴루이의 형 오고타이의 아들)입니다. 남편을 잃자마자 바로 결혼한다고!?라고 충격을 받은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이번 칼럼에선 몽골 제국에서 자주 보이는, 오늘날의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재혼 풍습인 레비레이트혼婚과 소로레이트혼婚에 대해 실제 사례와 함께 소개하려 합니다.

 

| 레비레이트혼

 소르칵타니와 귀위크의 혼담은 인류학에서 말하는 레비레이트혼이라는 관습에 의한 것입니다. 레비레이트혼이란, 남편을 잃은 여성이 남편의 동생이나 조카, 혹은 친아들이 아닌 남편의 아들 등 죽은 남편의 친족 남성과 재혼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계 각지에 있던 관습인데, 당시 몽골 사람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현재는 케냐의 루오인 사회 등에 남아 있습니다).

 외에도 첫 남편 칭기즈 칸이 죽은 후 그 아들 오고타이와 재혼한 모게나 키르기스타니, 혼약자 툴루이가 죽은 후 툴루이의 장남 몽케와 결혼한 오굴 투이미시, 네 명의 남성과 결혼한 알라카이 베키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모게와 키르기스타니는 이전 칼럼 몽골 제국의 제왕家에서 다뤘기 때문에 이 칼럼에서는 오굴 투이미시와 알라카이 베키를 소개하려 합니다.

 

 오굴 투이미시는 오이라트족의 유력자 쿠도카 베키의 딸입니다. 쿠도카 베키는 1208년 칭기즈에게 복속했고, 그 후 칭기즈의 군을 이끌어 공적을 세웠습니다. 그 공적을 높이 사 칭기즈의 사남 툴루이와 쿠도카 베키의 딸 오굴 투이미시, 칭기즈의 딸 치체겐과 쿠도카 베키의 아들 투랄치 두 커플의 혼담이 성립했습니다. 그러나 혼약 도중 툴루이가 죽어 오굴 투이미시는 툴루이의 아들 몽케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오굴 투이미시에겐 본래 툴루이와 혼담이 오갔기 때문인지 몽케의 동생 쿠빌라이나 훌라구를 '아들'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참고로 치체겐과 투랄치의 혼담은 그대로 이어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머니 쪽(칭기즈의 손자들)에게 시집갔습니다. 쿠도카 베키 家와 칭기즈 家의 밀접한 혼인 관계는 이후 수 세기동안 이어집니다.

 

 알라카이 베키는 칭기즈의 딸입니다. 알라카이는 처음에 칭기즈에게 복속한 옹구트족의 유력자 알락시 티긴 코리와 결혼했습니다. 알락시가 죽은 후엔 알락시의 아들 부얀 시반과 결혼했고, 부얀이 죽은 후 부얀의 사촌 센구이와 결혼, 센구이가 죽자 부얀 시반의 아들 보요카와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죽은 여성이 모두 레비레이트혼을 했던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칭기즈의 어머니 호엘룬은 남편 예수게이의 친족 남성이 아닌 콘고단족의 뭉리크라고 하는 사람과 재혼했습니다. 1203년경 칭기즈(당시에는 테무진)가 당시 적대하던 토오릴(칭호 옹 칸)의 침략을 받고 끌려갔을 때, 뭉리크가 이를 구해주었습니다. 1206년, 칭기즈가 칸의 자리에 오르자 뭉리크의 공적을 알리기 위해 칭기즈는 뭉리크에게 천호장 자리를 주고 어머니 호엘룬의 재혼 상대로 추진했습니다.

 

| 소로레이트혼

 한편, 부인을 잃은 남성이 죽은 부인의 자매나 조카딸과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문화인류학에서는 이러한 관습을 소로레이트혼이라고 합니다.

 칭기즈의 차남 차가타이와 콘기라트족의 예슬룬, 테르켄 자매가 그 일례 중 하나입니다. 콘기라트족은 칭기즈의 일족과 대대로 혼인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칭기즈의 어머니 호엘룬이나 아내 보르테도 콘기라트족 출신입니다. 예슬룬은 차가타이의 제1카툰(황후)으로, 차가타이에겐 많은 부인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예슬룬을 가장 신뢰했다고 합니다. 예슬룬이 먼저 죽자 차가타이는 예슬룬의 여동생 테르켄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다른 예로 고려의 충숙왕과 원나라 황제 테무르(칭기즈의 고손자)를 대숙부로 둔 김동과 바안후트가 있습니다.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중반까지 고려는 원나라의 간섭을 받고 있었고, 대부분의 왕이 몽골 황실 출신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충숙왕은 김동과 먼저 결혼했지만 김동이 어린 나이에 죽자 김동의 자매인 바안후트와 결혼했습니다.

 또, 칭기즈의 고손자이자 일 칸국 군주였던 아르군 칸은 제1카툰 쿠틀루크가 죽자 쿠틀루크의 조카딸 올자타이와 결혼해 카툰 지위를 잇게 했습니다. 몽골 제국의 카툰은 본인의 궁정과 유목지는 물론이고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어 카툰 지위를 누군가 잇지 않으면 큰 문제로 번졌습니다.

 

| 덤 ⸻ 몽골 황실의 결혼 상대

 지금까지 소개한 레비레이트혼과 소로레이트혼의 사례를 보면 오이라트족, 옹구트족, 콘기라트족, 고려 왕가가 몽골 황실과 밀접한 혼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중 콘기라트족(알치 노얀 家)과 오이라트족(쿠도카 베키 家)은 몽골 황실과 대대로 일족의 여성들을 시집보내는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한편 옹구트족(알락시 티긴 코리 家)과 고려 왕가는 황실의 여성을 대대로 아내로 맞이했으나 일족의 딸을 황실에 시집보내는 경우는 적거나 거의 없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 다루진 않았지만 위구르 왕가도 옹구트족이나 고려 왕가와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황실의 여성이 시집가는 일족은 황족 다음의 지위를 갖고 있었고, 몽골 제국의 최상 계층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