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의 자두가르를 더욱 재미있게!』 몽골 제국의 서방 원정

 본 칼럼은 만화 『천막의 자두가르』의 무대가 되는 땅의 역사나 문화를 연재 형식으로 소개하는 칼럼입니다. 이번에는 몽골 제국의 서방 원정 중 1219년부터 1233년까지의 서방 원정을 소개하려 합니다.

 

 제26막 중반에서 몽골 제국 2대 황제 오고타이가 서방으로부터의 사절을 알현하며 '몽골이 진군한 지도 벌써 14년인가….'라고 말했습니다. 제26막의 무대는 1233년 봄이니 그 14년 전은 1219년이 되겠네요.

서방으로부터의 사절을 알현하는 오고타이 (제26막)

 1219년은 몽골 제국 초대 황제 칭기즈 칸이 아들이나 부하를 데리고 서쪽의 호라즘 샤아 왕조를 향한 원정을 시작한 해입니다. 1218년 몽골 제국의 통상通商단이 호라즘 샤 왕조가 다스리는 동북부의 도시 오트라르에서 스파이 혐의로 처형당한 것이 원정의 계기입니다.

1219년 호라즘 샤 왕조와 그 주변 (Google Earth를 바탕으로 칼럼 필자 작성, 대략적인 영역만 표시함.)

 원정의 결과를 대략적으로 적자면 우선 1219년 여름 호라즘 샤 왕조의 국왕 알랄 앗 딘 무함마드와의 전투는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그 후 같은 해 말 오트라르, 부하라, 사마르칸트, 우르겐치, 투스(만화의 주인공 시타라/파티마의 출신지), 니샤푸르, 바미안이라는 도시를 차례차례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르겐치 공략 도중 칭기즈의 장남 주치와 차남 차가타이가 대립해 삼남 오고타이가 중재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제5막)

 도망친 국왕 알랄 앗 딘 무함마드를 쫓아 서쪽으로 향한 부대(수부타이/수베게데이, 제베가 이끈 군단)가 국왕이 죽은 후(1220년)에도 계속 나아가 저 멀리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 루시, 볼가-불가리아까지 손을 뻗어 전투를 벌였습니다. 한편 다른 부대는 1221년 봄 죽은 국왕의 아들 잘랄 앗 딘 밍부르누에게 크게 패했고, 그 후 칭기즈가 직접 나서 잘랄 앗 딘을 인더스 강 유역까지 몰아붙여 도망치게 하는 등 다양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본대가 본거지로 돌아온 건 1225년입니다.

1225년 개선하는 몽골군 (제7막)

 

 

 칭기즈가 원정으로 손에 떻은 땅 중 아무강 북쪽 지역은 이미 부흥에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강 이남 지역에는 손을 뻗지 않고, 인더스 강 너머로 도망친 잘랄 앗 딘의 귀환도 용서했습니다. 1227년 죽은 칭기즈의 뒤를 이어 1229년 황제 자리에 오른 오고타이는 재빠르게 잘랄 앗 딘을 치기 위해 초르마군이라는 인물에게 군대를 맡긴 뒤 서방으로 군을 파견했습니다. 초르마군과 초르마군이 이끄는 군대는 잘랄 앗 딘의 본거지였던 아제르바이잔에 다다랐고, 1231년에 그 세력을 멸망시켰습니다.

 참고로 초르마군은 칭기즈 밑에서 '코르치' (활통잡이箭筒士, 황제의 호위 등 궁정의 다양한 업무를 맡은 집단 케시크/케시크텐의 주요 직책)로 일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케시크/케시크텐에서 시작해 군대의 요직을 맡게 된 자는 무척 많습니다(예를 들어, 1223년 볼가-불가리아까지 진군했던 수부타이/수베게데이나,  만화 본편 제17막~제18막의 금나라 원정에 참가했고 그 뒤 현지에 남아 탐마치를 이끈 다가차르가 있습니다). 이런 케시크/케시크텐은 제국의 엘리트를 양성하는 기능도 했습니다.

사냥 중인 칭기즈(중앙)와 그 옆의 코르치들 (제7막)

 또, 초르마군의 군대는 탐마치라고도 불렸습니다. 탐마치란, 몽골 제국의 각 천호나 백호, 십호에서 선발한 일정 수의 병사와 정복 지역에서 징발한 사람들로 구성된 군단입니다. 탐마치는 제국 근경에 주둔하며 치안 유지를 담당했습니다. 실제로 초르마군의 군대는 천호나 만호에서 선발된 사람들과 정복 지역(구 호라즘 샤 왕조, 아제르바이잔, 조지아)에서 징발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군단으로, 잘랄 앗 딘을 멸망시킨 뒤에도 계속 현지에 남아 치안 유지를 담당했습니다.

 

 

 초르마군의 대 잘랄 앗 딘 원정이 이루어질 즈음, 초르마군 군의 원조를 담당한 것이 친 테무르라는 인물입니다. 친 테무르는 1219년부터 원정에 참가하여 칭기즈의 장남 주치의 곁에서 활약했던 경력이 있어 원조 담당자로 임명되기 전엔 다루가치[각주:1]로서 우르겐치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1230년 구 호라즘 샤 왕조 영토와 그 주변 (Google Earth를 바탕으로 칼럼 필자 작성, 대략적인 영역만 표시함.)

 친 테무르는 1230년경 호라산으로 이주해 아트레크강 부근에 계절별 유목지를 두고 집무를 본 모양입니다. 당시 호라산의 치안은 무척 나빠 몽골 제국의 군정관(다루가치)가 살해되기도 했었습니다. 이 사건을 들은 오고타이는 타이르 바토르라는 인물에게 진압을 명령했습니다. 이때 친 테무르는 타이르 바토르가 도착하기 전에 다루가치를 살해한 세력을 혼자 힘으로 뒤쫓았습니다. 그리고 타이르 바토르가 그 세력을 쫓아 전투를 하고 있던 중엔 호라산과 그 서쪽의 마잔다란의 행정을 장악했습니다. 이걸 본 타이르 바토르는 친 테무르에게 호라산의 행정에 손을 뗄 것을 요청했고, 초르마군도 이에 동조했습니다. 곤란해진 친 테무르는 1233년 오고타이에게 사자를 보내 직접 호소하기로 합니다.

타이르 바토르나 초르마군과 대립해 오고타이에게 사자를 파견한 친 테무르 (제26막)

 친 테무르는 오고타이에게 사자를 보낼 때 자신의 밑에 복속시킨 호라산이나 마산다란의 유력자를 함께 보냈습니다. 역사서 『세계정복자의 역사』에 따르면, 유력자를 본 오고타이는 기뻐하며 '초르마군의 원정 이래로 많은 나라가 몽골 밑에 들어왔지만 우리 곁에 아직까지도 국왕 한 명 보내지 않았다. 친 테무르는 다스리는 영역도 좁고 자원도 부족하지만 이렇게 충성스럽고 부지런하게 일한다. 친 테무르를 칭찬한다. 호라산과 마잔다란의 장관직을 친 테무르에게 맡긴다. 초르마군이나 다른 장관은 손을 떼도록.'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복속시킨 유력자를 함께 보낸 친 테무르 (제26막)

 이런 호소 끝에 친 테무르는 오고타이의 칙명으로 호라산과 마잔다란의 총독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흔히 말하는 이란 총독부 설치).

이란 총독부 설치 (제26막)

 

| 덤 ⸻ 코르구즈라는 인물

 역사서 『세계정복자의 역사』엔 1233년 친 테무르가 오고타이의 곁에 보낸 사자 중 코르구즈라는 인물의 이름이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년 후, 친 테무르가 오고타이의 곁에 다시 보낸 사자엔 코르구즈라는 서기관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코르구즈는 웅변가(!)로 코르구즈의 보고에 오고타이가 크게 기뻐했다고 합니다.


아래 접은글은 칼럼 원문에는 없는 저의 사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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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도 첨부된 코르구즈의 보고 장면의 원문은 이렇습니다↓

 

코르구즈: 그리고 대카안을 위해 분주하는 저의 상사 친 테무르의 공적을 인정해 주십시오. 그는 지배지의 실권자들과 트러스트를 구축하고 스피디한 세제의 시행을 프로모트하고 있습니다. 일부 장교들이 그와 대립하고 있지만, 그들은 쓸데없는 혼란을 부추기는 리스펙터입니다. 친 테무르야말로 진정으로 대카안과 이 제국을 위해 서스테이너블한 리더십 스트럭쳐를 빌드할 수 있는 사명을 띤 에이전트입니다. 부디 그를 페르시아 총독으로 어사인하시어 더 큰 프로스퍼리티와 오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서포트해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오고타이: 하아아.

보락친: 아마 페르시아에 주재하는 장군들 사이에 파벌 싸움이 있는 모양입니다.
오고타이: 그렇군…그래서 친 테무르는 톱다운… 아니 칙명을 원하는 건가.

 

코르구즈가 웅변가라는 걸 외래어를 가득 섞어 말하며 상대를 압도하는 화법으로 살린 것 같습니다. 정발판에서는 가독성이나 의미 전달 문제로 생략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개그씬인지라 이렇게 사족으로 달아봅니다….

 

  1. 몽골 제국이 정복하거나 복속시킨 넓은 지역의 통치를 위해 파견한 감독관. - 우리역사넷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