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만화 『천막의 자두가르』의 무대가 되는 땅의 역사나 문화를 연재 형식으로 소개하는 칼럼입니다. 이번 주제는 천문학입니다.
제25막 중반, 오고타이는 파티마에게 어째서 별이 하늘을 도는지 알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파티마는 하늘은 회전하는 구체이며 그 중심에 우리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우주가 구체라고 여기는 개념(천구 개념)은 고대 그리스에서 발달했고, 그 후 파티마의 고향을 포함해 이슬람권에 널리 받아들여진 개념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천구 개념을 초기에 집대성한 건 에우독소스(기원전 4세기, 플라톤의 제자)가 만든 동심천구 모형입니다. 이 모형은 기하학에 기초해 천문학을 설명하려 한 세계 최초의 시도였습니다.
에우클레이데스(기원전 3세기, 저서 『원론』) 덕에 기하학이 엄밀한 학문으로 체계화되었고, 프톨레마이오스(기원후 1~2세기, 저서 『알마게스트』) 등이 행성의 불규칙적인 운동을 기하학 모델로 설명하려 시도했습니다.
행성이 아닌 별을 매일 밤 같은 시간에 관찰해 보면 별의 위치는 조금씩 서쪽으로 이동합니다. 하지만 행성의 위치는 때로는 서쪽으로, 때로는 동쪽으로 이동합니다. 때로는 빠르게 이동하지만 때로는 느리게 이동하는 등 불규칙적으로 이동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세운 모형은 지구가 아닌 점을 중심으로 하는 이심원離心圓, 이심원 위를 도는 주전원周轉圓, 도원의 중심 옆, 지구 반대쪽에 있는 가상의 점 '동시심(equant)'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지구에서 보기엔 불규칙적인 행성의 속도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이슬람 제국 아바스 왕조(750년~)는 이 그리스 학문을 받아들여 그 명맥을 이었습니다. 아바스 왕조는 그리스어 서적을 아라비아어로 번역했으며, 그리스 학문을 익힌 학자가 궁정의 권력자에게 조언을 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945년 수도 바그다드의 통치자가 부와이 왕조로 바뀌어 아바스 왕조의 권력이 실질적으로 소멸된 뒤에도 그리스 학문을 익힌 학자들은 이슬람권 각지의 궁정에서 활약했습니다. 부와이 왕조 궁정의 이븐 시나나 비루니가 그 좋은 예입니다.
이슬람권에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모형을 검사하고 수정을 거듭해 더욱 발전시킨 학자로는 투시(1201~1274년)가 있습니다. 투시는 아래 그림과 같은 모델로 행성의 불규칙적인 움직임을 설명했습니다. 일정한 속도로 등회전하는 구 안에 반지름이 그 구의 절반인 다른 구가 회전하는 이 모델을 투시의 대원對圓이라고도 합니다.
이 모델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제창한 『천구회전론』(1543년 출판) 제3권 4장에도 등장합니다. 코페르니쿠스는 투시의 이름을 언급하진 않으나 어떠한 방식으로 투시의 천문학이 후대에도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투시는 몽골 제국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투시는 이란/이라크 지역의 정권을 잡은 몽골 제국의 일 칸국의 군주 훌라구 곁에서 천문대의 건설이나 『일 칸 천문편람』을 편찬(1272년경 완성)에도 참여했습니다.
이 편람은 당시 몽골 제국의 위정자가 사용했던 키타이력(키타이는 중국을 가리킴)과 일 칸국에서 사용했던 다섯 달력(셀레우코스력, 이슬람력, 데길드력, 잘라리력, 히브리력)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달력에 순위를 매긴다거나 한 달력으로만 날짜를 표기해 적진 않았습니다. 이것은 몽골 제국의 정치 방침⸻서로 다른 지적 전통을 하나로 통일하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여 정책 결정 시 다른 의견을 듣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것⸻의 예 중 하나로 볼 수 있겠습니다.
다른 예로 쿠빌라이 칸(1215~1294년, 원나라의 건국자)이 기독교도나 이슬람교도, 한인의 점성술사를 최대한 많이 불러들여 각 유파의 점술을 행하게 한 사례나, 쿠빌라이 칸 이후 원나라에서 한인 천문학자를 모은 천문대 한아사천대, 이슬람교도 천문학자를 모은 회회사천대를 병설한 사례도 들 수 있습니다. 또, 일 칸국의 군주 훌라구가 서방 원정중 바그다드를 공격하기 전날 밤, 공격 반대파였던 궁정 점성술사 후삼 앗 딘(이슬람교도)과 공격 찬성파였던 불교도, 장군, 투시 두 파로부터 의견을 모은 뒤 결단을 내렸다는 일화도 그 예 중 하나입니다.
또, 칭기즈 칸 이후 몽골 제국에선 특정 종교가 아닌 불교, 영교(기독교 네스토리우스파), 도교, 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의 지도자의 세금을 면제해주는 대신 황제에게 좋은 천명이 내려질 수 있도록 기도하게 한다는 방침을 취했습니다.
지금까지 제25막 중반 오고타이의 질문과 파티마의 대답(어째서 별은 하늘을 도는가⸻하늘은 회전하는 구체이며 그 중심에 우리가 있기 때문)에서부터 시작해 천문학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25막에서 파티마가 대답한 뒤 오고타이는 옛날에 들었던 이야기라며 별이란 기둥(북극성)에 묶인 하늘의 가축들이라는 설을 언급합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시베리아나 몽골, 중앙아시아의 샤머니즘(무술)을 연구한 우노 하르바에 저서에도 실려 있습니다. 키르기스인은 북극성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작은곰자리의 세 별을 '밧줄'이라 부르며 거기에 두 개의 큰 별, 즉 '두 마리의 말'이 묶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몽골인은 하늘의 별은 큰 말의 군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25막에서 오고타이가 옛날에 들은 이야기는 이런 전승에 기반한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기독교 선교사 칼피니와 루브루크가 남긴 여행기는 파티마나 오고타이가 살았던 시대와 비슷한 시대인 13세기 중반에 몽골인은 별의 회전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칼피니의 여행기에는 몽골인들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초승달이 뜨는 날이나 보름달이 뜨는 날을 골랐고, 달을 대황제라고 부르며 달에게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달이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기에 태양을 달의 어머니라고 생각했다고도 적혀 있습니다.
루브루크의 여행기에 따르면 몽골에는 점성술에 정통한 점쟁이가 있어 일식이나 월식을 예언하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집 문을 걸어잠그고 북이나 악기를 연주했고, 일식과 월식이 끝나면 자유롭게 먹고 마시며 즐겼다고 합니다.
| 덤
천문학의 발전엔 정밀한 관측기기가 필수불가결합니다. 아스트롤라베는 고대 그리스에서 개발하고 이슬람권이 개량을 거듭해 널리 쓰였던 천문관측기기입니다. 아스트롤라베 덕에 하루에 다섯 번 있는 예배 시간이나 메카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아스트롤라베는 한 해의 천체나 시간 데이터나 지리적 계산, 점성술 정보 등 다종다양한 데이터 처리에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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