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의 자두가르를 더욱 재미있게!』 몽골 제국의 천막

본 칼럼은 만화 『천막의 자두가르』의 무대가 되는 땅의 역사나 문화를 연재 형식으로 소개하는 칼럼입니다. 이번에는 만화에서도 자주 등장한 파티마와 다른 등장인물이 거주하는 공간인 천막을 주제로 천막의 구조나 설치 방법을 소개하려 합니다.

천막의 기둥이 쟁반 위로 무너지는 소리에 놀라는 장면 (제21막)

 

| 구조

 예로부터 유라시아 대륙 중앙의 유목민은 펠트 천으로 덮인 천막에서 지내며 계절에 따라 가축을 사육하기 적합한 장소⸻봄 영지, 여름 영지, 가을 영지, 겨울 영지를 순서대로 이동하는 생활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1236년에 몽골 제국을 방문한 서정의 기록에는 두 종류의 천막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연경지제燕京之制. 연경은 현재의 베이징을 가리킵니다. 연경지제는 얇은 버드나무 목재를 격자 모양으로 엮은 벽을 사용합니다. 이동할 땐 이 벽을 작게 접어 말에 싣고 옮깁니다. 벽 위에 올리는 지붕은 지붕에 낸 창을 중심으로 하는 우산 형태의 골조 위에 올립니다.

격자 모양의 벽, 지붕의 창을 중심으로 하는 우산 형태의 골조 지붕 (제21막)

 이러한 구조의 벽과 지붕을 가진 천막의 미니어처가 몽골 바잉헝가르 현에서 출토되었습니다. 또, 몽골 동부의 헹티 현 델게르항 군에 위치한 14세기말 몽골 묘지에서도 가장 오래된 격자 모양의 벽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묘에서 발견된 격자 모양의 벽을 둥글게 말아 유체를 감싸는 관 대신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초지지제草地之制. 초지지제의 벽은 연경지제와 같은 버드나무 목재를 사용해 만들지만 접을 순 없습니다. 이동할 땐 천막 자체를 큰 짐수레 위에 싣고 옮겼습니다. 초지지제는 1233년 몽골 제국의 궁정을 방문한 팽대아, 1246년 방문한 칼피니, 1253년~1254년 방문한 루브루크의 기록에도 등장합니다.

짐수레 위에 천막을 싣고 이동하는 모습 (제7막)

 

| 설치 방법

 계절에 따라 이동해야 하는 천막은 실제로 어떻게 설치했을까요? 루브루크의 기록에 따르면 아래와 같습니다.

 

 ⸻천막을 설치할 땐 문은 반드시 남쪽을 향하게 하고 큰 상자(=가재도구가 든 수납장)를 옮긴 차를 집의 양쪽에, 그것도 집에서 돌을 던져도 닿을 거리의 절반 정도 떨어진 거리에 세운다. 그렇게 하면 집은 마치 벽 두 개 사이에 낀 것 같은 모양새가 된다. 이 두 차 사이에 천막을 세운다. (중략) 문은 남쪽을 향하게 둔다면 집주인의 소파는 북쪽에 둔다. 여자들의 자리는 항상 동쪽, 즉 집주인이 남쪽을 보고 앉으면 그 왼쪽에 여자들의 자리가 있다. 남자들의 자리는 서쪽, 즉 집주인의 자리에서 보면 오른쪽이 된다. 남성들은 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올 때 자신의 화살통을 절대 여자들의 자리에 두어서는 안 된다.

 

 또 팽대아의 기록에 따르면, 군주 역시도 천막은 남쪽을 향하게 세웠으며 군주의 천막 북쪽에는 황후와 황비의 천막을, 더 북쪽에는 호위와 관리들의 천막을 세웠다고 합니다.

중앙의 기단基壇 위에 있는 것이 오고타이의 천막, 그 북쪽에 있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천막 (제21막)

 팽대아의 기록에선 대大오르도라는 단어도 등장합니다. 군주의 계절별 이영지를 전부 오르도라고 불렀는데, 그중에서도 삼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였고 남쪽은 탁 트였으며, 등 뒤에는 높고 낮은 언덕이 있어 바람이 약한 지역을 대오르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대오르도는 몽골 헹티 현의 아우라가 유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우라가는 칭기즈의 겨울 영지로, 칭기즈가 죽은 후 제국의 거점 중 하나로 쓰였습니다.

 

 아우라가 유적은 북쪽의 언덕과 남쪽의 아우라가 강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남북 500m, 동서 200m 범위 내에 건물의 흔적(천막의 기단이나 목조, 햇볕에 말린 벽돌/기와 등을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중앙에는 궁전이, 궁전의 남쪽에는 공터가, 동서에는 가신들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던 모양입니다.

 

| 덤 ⸻ 오늘날의 천막

 오늘날에도 몽골과 중국의 내몽골 자치구, 키르기스, 카자흐스탄, 러시아 남부에서는 천막 생활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만 그 명칭이나 형태는 지역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명칭의 경우 몽골어로는 '게르(집)', 현대 중국어로는 '파오包', 카자흐어로는 '키이즈 위이(펠트로 된 집)', 키르기스어로는 '보즈 위이(회색 집)', 러시아어로는 '유르트(튀르크어에서 유래)'라고 부릅니다. 

 형태에도 차이가 있는데, 예를 들어 몽골 유목민의 천막에 비해 카자흐 유목민의 천막은 천장이 더 높습니다. 천막을 장식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 오사카 스이타시 국립민속박물관 중앙/북아시아 전시에서 이 두 천막의 실물을 볼 수 있습니다.

 

 윗 문단에선 몽골, 내몽골 자치구, 키르기스, 카자흐스탄, 러시아 남부 등의 지역에는 천막 생활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론 어느 지역이든 많든 적든 아파트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몽골은 사회주의 시대 소련의 설계에 기반한 아파트가 다수 건설되었습니다.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진행한 아파트 연구에 따르면 '몽골 사람들의 주거는 거주 지역부터 방의 배치까지 조금씩 생활하기 편한 쪽으로 바뀌고 있다. 몇몇 벽이나 문을 철거하고 가족의 공용 공간(소파나 TV가 있는 큰 방, 부엌, 복도, 현관 등)을 받아들여 사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중략) 소련의 설계자가 계획한 방 배치와 비교하면 몽골 사람들은 게르와 비슷한 가족 공유 공간을 추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