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의 자두가르를 더욱 재미있게!』 을미적책籍冊과 병신년분발分撥

해당 번역본에는 『천막의 자두가르』 한국 미정발본의 일부 장면과 추후 전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읽지 않는 걸 추천드립니다. 
해당 번역본에 첨부된 미정발본 장면은 칼럼에 수록된 장면'만' 임의로 번역한 것입니다. (문제시 삭제, 정발 후 수정합니다. 미정발분 전부 직접 구매하여 읽고 있습니다.)

 

 

 

 

 

 본 칼럼은 만화 『천막의 자두가르』의 무대가 되는 땅의 역사나 문화를 연재 형식으로 소개하는 칼럼입니다. 

 

 제34막에 주인공 파티마가 퇴레게네에게 몽골 제국이 옛 금나라 영토를 지배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파티마의 설명 (제34막, 단행본 미수록)

 위 컷에서 파티마가 말한 '강북은 전의 전쟁으로 금나라를 멸망시킨 후 몽골이 손에 넣은 지역을 가리킵니다.' '지금은 이 지역에 사는 정주민의 호수에 따라 몽골의 각 왕가에게 분배되었어요.'같은 대사는 몽골 제국이 실제로 시행했던 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 대사의 맥락을 보충하는(?) 형태로 몽골 제국이 어떻게 이 지역을 손에 넣고, 지배 체제를 구축했는지 해설하려 합니다.

 

| '강북은 전의 전쟁으로 금나라를 멸망시킨 후 몽골이 손에 넣은 지역을 가리킵니다.'

 몽골 제국의 금나라 침공은 만화 본편 제34막에서 거슬러 올라가자면 25년 전, 초대 황제 칭기즈 칸 치세의 1221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칭기즈의 자리를 이어받아 황제가 된 오고타이 카안이 1230년 동생 툴루이나 숙부 테무게와 함께 대군을 이끌고 금나라를 침공해 1232년 금나라의 군주력을 격파했고, 1234년 금나라는 멸망합니다.

 

 1230년부터의 전쟁은 만화 본편 제15막~제18막에도 자세히 그려져 있습니다.

1230년부터의 전쟁 (제17막)

 전쟁 직후인 1235년 황제 오고타이는 새로운 인력을 투입해 지배 지역의 호적부를 작성할 것을 명령했고, 다음해 1236년, 그 호적부를 바탕으로 몽골의 왕가나 공신에게 백성과 땅을 분배했습니다. 참고로 이 호적부를 을미적책乙未籍冊, 분배를 병신년분발丙申年分撥이라고 부릅니다. 을미와 병신은 육십갑자 중 하나로, 호적부를 작성하고 분배한 연도를 가리킵니다.

 

 호적부의 작성을 총괄한 건 시기 쿠투쿠라는 인물로, 칭기즈가 어린 쿠투쿠를 주워 양자로 데려다 길렀습니다.

 

 1206년, 칭기즈는 시기 쿠투쿠를 단사관 자리에 임명합니다. 단사관이란, 제국의 백성을 왕가나 공신에게 분배하고, 그 분배에 대한 이의를 듣고 적는 일입니다. 분배나 이의에 대한 내용은 '푸른 장부(후흐 뎁텔)'에 기록했습니다. 그 후 1215년 칭기즈가 금나라의 수도를 함락시켰을 때 전리품을 조사하고 분배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칭기즈 사후, 칭기즈의 뒤를 이은 오고타이 치세에도 쿠투쿠는 단사관 역을 계속 이어가 호작부를 작성하고 호적부를 바탕으로 백성과 토지를 분배했습니다.

오른쪽이 단사관 시기 쿠투쿠 (제20막)

 몽골 제국 등 유목민을 중심으로 하는 나라에게 백성은 세금을 걷을 수 있는 재산입니다. 이 재산을 어떻게 잘 분배하느냐는 국가를 운영하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몽골 제국의 백성들과 백성들이 생활하는 토지는 명목상 황제만의 소유물이었지만, 실제로는 왕가나 공신의 공유재산으로써 분배되었습니다. 분배받은 자는 분배받은 것을 자신의 부하에게 분배하고, 부하는 그것을 또 자신의 부하에게 분배하는 피라미드 모양의 중층적重層的 분배 구조였습니다. 이 구조는 그 자체로 몽골 제국의 권력 구조를 의미합니다. 몫을 올바르게 분배하며 제국의 질서를 지키는 구조의 연결점 역할을 한 게 단사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구 조사가 끝난 걸 축하하는 연회 (제32막, 단행본 미수록)

 호적부에는 약 111만 호가 등록되었고, 이중 징병 대상이 된 건 100만 4,656호였습니다. 이때 등록된 사람들 중엔 전쟁 중에 포로가 되거나 항복해 몽골 지배계층(왕가나 공신들)의 소유물이 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중 금나라에 살던 사람들이 약 절반 정도를 차지했던 모양입니다. 이로 보아 호적부를 작성하고 호적부를 바탕으로 백성과 토지를 분배하는 건 지금까지 몽골 지배층이 각자 갖고 있던 포로나 항복한 자를 모아 기록하고 재정리한다는 의미를 지녔던 것으로 보입니다.

 

| '지금은 이 지역에 사는 정주민의 호수에 따라 몽골의 각 왕가에게 분배되었어요.'

 실제로 각 왕가에겐 몇 호수 정도의 백성이 분배되었을까요? 왕가에게 분배한 백성의 수를 가계도와 함께 나타내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왕가의 가계도와 분배

 주치 가, 차가타이 가, 쾰겐 가, 테무게 가 등은 칭기즈 치세에 각 왕가에게 분배된 몽골 병사의 열 배 정도를 분배받았습니다. 이 열 배가 기준이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각 왕가에게 분배된 땅의 지리 관계는 아래 지도대로입니다. (실제 분배엔 겹치는 땅이 많아 복잡했습니다. 여기에서는 대략적인 위치만 표시했습니다.)

분배된 땅 (Google Earth에 필자 작성)

 위 지도에서 빨간색으로 표시한 왕가는 몽골 고원에서도 서쪽에 세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노란색으로 표시한 왕가는 중앙, 파란색으로 표시한 왕가는 동쪽에 세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각 왕가에게 분배된 땅의 배치와 몽골 고원에서 각 왕가가 가진 세력의 위치는 어느 정도 일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분배한 토지에선 황제가 임명한 지방의 관리들이 세금을 걷고, 걷은 세금 중 일정 금액을 영주인 왕가에게 보냈습니다. 왕가 측은 이렇게 받은 돈을 받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 쓰며 현지에 영향력을 확보했습니다. 이건 나중에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