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의 자두가르를 더욱 재미있게!』 몽골 제국 건국까지의 여정

 본 칼럼은 만화 『천막의 자두가르』의 무대가 되는 땅의 역사나 문화를 연재 형식으로 소개하는 칼럼입니다. 이번에는 제 14막까지의 줄거리를 정리하며 몽골 제국 건국까지의 여정을 해설하려 합니다.

 

| 제14막까지의 줄거리

 13세기 초. 몽골 제국의 침략을 받은 이란 동부의 투스. 투스에서 노예로 일하던 소녀 시타라는, 상냥한 여주인 파티마를 눈 앞에서 잃고 포로가 되어 몽골 제국의 본거지까지 끌려갑니다. 세상을 떠난 여주인의 이름 파티마로 개명한 시타라는 그 후 엉뚱한 일에 휘말려 몽골 제국 황제의 제6황후 퇴레게네를 알게 됩니다. 퇴레게네의 과거를 안 파티마는, 어떤 목적을 위해 퇴레게네와 협력하기로 합니다.

 

 주인공 파티마의 인생을 크게 바꾼 몽골 제국은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일까요?

 

| 몽골 제국 건국까지의 여정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곳. 현재의 이름으로 말하자면 러시아 동남부, 몽골, 중국 북부 근처의 지역엔 거대한 고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850년 전인 12세기 중반 무렵. 이 고원에 테무진이라는 인물이 태어납니다. 당시 고원에는 몽골, 메르키트, 나이만, 케레이트, 타타르, 오이라트 등의 유목민 세력이 각각 땅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몽골의 일원으로 태어난 테무진은 케레이트의 유력자 토오릴(칭호는 옹 칸)이나 금나라와 손을 잡고, 유목민을 차례차례 몽골 산하에 편입시키며 유목민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리더로서의 칭호는 칭기즈 칸. 테무진이 칭기즈 칸이 된 1206년이 바로 몽골 제국이 건국된 해입니다.

테무진과 다른 세력간의 전쟁, 특히 나이만과 메르키트와의 전쟁은 퇴레게네의 과거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역사서 『집사』[각주:1], 『원사』[각주:2], 『성무친정록』[각주:3]의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각주:4]

 

간지 나이만 메르키트
뱀의 해(1197)   테무진에게 공격받음.
말의 해(1198)   케레이트의 토오릴(옹 칸)에게 공격받음.
양의 해(1199) 테무진과 토오릴(옹 칸)이 나이만을 공격함.  
? 퇴레게네: 메르키트의 유력자 다이르 우순(혹은 메르키트의 리더 토크토아 베키의 아들)과 결혼.  
쥐의 해(1204) 나이만의 리더 타이양 칸: 토크토아 베키와 손을 잡고 테무진과 싸움. 패배하여 사망. 다이르 우순: 딸 쿨란을 테무진에게 바치고 항복. 그 후,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당하고 사망.

메르키트의 리더 토크토아 베키: 타이양 칸과 손을 잡고 테무진과 싸움. 패배하여 도망침.
?   퇴레게네: 테무진의 삼남 오고타이와 결혼.
호랑이의 해(1206) 테무진: 칭기즈 칸의 칭호를 얻음. 몽골 제국 건국.
용의 해(1208) 타이양 칸의 아들 쿠츨루크: 토크토아 베키와 손을 잡고 칭기즈 칸과 싸움, 패배. 서료로 도망. 토크토아 베키: 쿠츨루크와 손을 잡고 칭기즈 칸과 싸움, 패배하여 사망. 아들 쿠르트간은 서방으로 도망.
쥐의 해(1216)   쿠르트간: 테무진(칭기즈 칸)의 장남 주치에게 붙잡혀 처형.
호랑이의 해(1208) 쿠츨루크: 서료를 침공한 몽골군에 의해 사망.  

 

 만화 『천막의 자두가르』에서 그려진 퇴레게네의 회상은 양의 해(1199)와 호랑이의 해(1206) 사이에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그려졌습니다. 제11막은 퇴레게네가 다이르 우순에게 시집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제12막에서 다이르 우순은 딸 쿨란을 테무진에게 바치며 항복하기로 다짐합니다.

  항복 후, 다이르 우순은 반란을 일으켰으나 금방 진압되어 살해당합니다. 남겨진 퇴레게네는 테무진의 삼남 오고타이와 결혼해 살아가게 됩니다.

 

| 덤: 국가(울루스)란? 

 메르키트나 나이만 등 저마다의 세력과의 전쟁을 거치며 건국된 몽골 제국. 당시 몽골어로는 Yeke Mongɣol Ulus대 몽골 울루스라고 합니다. 한편, 칭기즈 칸의 아들(주치, 차가타이, 오고타이, 툴루이)나 동생(테무게 등)의 속령도 각자의 울루스라고 불렸습니다.

 이 울루스라는 단어에 대해, 역사/언어학자 블라디미르초프는,

'순수한 유목민인 몽골인은, 이 개념(=울루스)을 영토가 아닌 영민으로 이해했다. 즉, 울루스라는 말의 일차적인 의미는 "사람"이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역사학자는

'울루스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기초적 사회 집단이 아닌, 한 리더 밑에서 인위적으로 모인 (중략) 집단'

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울루스란, 한 명의 리더 밑으로 조직된 사람들의 집단이라 해석한다면, 리더 칭기즈 칸이 다스리는 몽골 제국의 모든 국민과 칭기즈 칸의 아들이나 동생 하나하나가 리더로서 다스리는 영민 모두 울루스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울루스는 사람의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가 울루스의 리더의 영지가 됩니다. 단, 이 영지에 엄격한 국경선은 없고 현대의 영토보다 좀 더 유동적인 영역이었습니다. 또 사람의 집단이긴 하지만 현재 우리가 '국민'이나 '민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집단보다 더욱 다종다양하여 언어나 관습 등이 전부 다른 사람의 모임이었습니다.

 현대인이 지금 사용하는 국경선, 국민, 민족 등의 개념이 확립된 건 몽골 제국 시대 이후의 일입니다.

 

 

 

  1. 일 칸국의 군주 카잔의 명령으로 라시드 앗 딘이 편찬한 14세기 초의 역사서. 원서는 페르시아어로, 러시아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 몽골어 번역이 있다. 최근 일본어 번역본도 출간되었다. [본문으로]
  2. 중국 명나라 홍무제의 명령으로 편찬된 14세기 후기의 역사서. [본문으로]
  3. 작성년도 불명의 한문 역사서. [본문으로]
  4. 집사 러시아역본, 원사, 성무친정록 외에도 요시다 슌이치의 『원조비사의 역사성-그 연대기적 측면의 검사』도 참조함.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