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의 자두가르를 더욱 재미있게!』 몽골 제국의 오르두

 본 칼럼은 만화 『천막의 자두가르』의 무대가 되는 땅의 역사나 문화를 연재 형식으로 소개하는 칼럼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야기의 주요 무대 중 하나인 궁정宮廷에 대해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 오르두의 풍경

 

  몽골 제국의 황제나 황후의 거처를 오르두라고 합니다. 또, 각각의 거처가 모여 이루어진 '궁정' 역시 오르두라고 부릅니다. 오르두라는 단어는 몽골뿐만이 아니라 돌궐(6~8세기)이나 위구르 제국(9세기 중반~1280년경), 거란(4세기~1125년), 금나라(1115~1234년), 티무르 제국(1370~1507년), 무굴 제국(1526~1858) 등, 유라시아 대륙에서 오래전부터 널리 쓰였습니다.

 

 지금부터 본 칼럼에서는 오르두를 군영을 가리키는 말로써 사용하려 합니다. 몽골 제국의 황제는 자신의 오르두와 함께 계절마다 이동하는 유목 생활을 보냈습니다. 예를 들어, 카라코룸(구글 지도)으로 천도한 이후의 이동 경로는 다음과 같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여름에는 카라코룸에서 게겡차강(아르항가이현 우기노르군 도이틴 발가스Doytyn balgas 유적, 구글 지도)이라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물새를 사냥하기 좋은 소택沼澤 지대입니다. 여름이 되면 카라코룸을 경유해 우르멕투(우부르항가이현 바트우르지군 부근으로 추정, 구글 지도)라는, 시원하면서도 물이 풍부한 고지高地로 향했습니다. 가을에는 쿠케(쿠시) 노르(오늘날의 쿠이시 나이만 노르 호수로 추정, 구글 지도)이라는 호수로 향한 뒤, 그곳에서 마유주를 하늘에 바치는 축제를 열었습니다. 겨울에는 옹기 강 부근(우브르항가이현 바잉걸군 사잔 호트 유적, 구글 지도)으로 향했습니다. 야생동물이 많아 사냥을 하며 지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봄이 되면 카라코룸으로 돌아가 다시 게겡차강으로 향하는…그런 1년을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1년간 약 550km 정도를 이동했습니다.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모습 (5권 31막)

 

 이동할 땐 황제와 그 가족 외에도 가신과 가신의 친인척, 노예, 가축도 함께 움직였습니다. 팽대아彭大雅라는 사람의 견문록에 이동 장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팽대아는 남송의 황제 이종의 명령으로 1233~34년에 몽골 제국을 방문했고, 이때 황제 오고타이가 이동하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 이동은, '소, 말, 낙타가 끄는 게르를 테운 수레가 다섯 대로 나뉘어 마치 개미의 행렬처럼 구불구불 움직이며 행진했다. 행렬의 길이는 약 15리(약 8km), 폭은 절반 정도였다.'는 모양입니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네요.

 

 오르두 내의 주거는 어떤 식으로 배치했을까요? 1254년 몽골 제국에 방문해 황제를 알현했던 프랑스 출신의 수도사 루브룩의 기록에 그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루브룩의 기록에 따르면, 제1황후가 기거하는 천막을 기준으로 동쪽에는 제2황후, 제3황후, 제4황후의 천막이 순서대로 늘어서 있었고, 서쪽에는 황자의 천막이 있었으며, 주위에는 경교(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교회나 샤먼의 장이 사는 천막도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오르두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는 행사에서 황제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황후들, 서쪽에는 황자들과 같은 남성이 앉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천막의 배치도 행사에서 앉는 순서와 같은 원칙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루브룩의 기록에는 황후 개인의 거처는 등장하지 않고, 황제는 매일매일 황후들 중 한 명을 골라 하루 종일 그 황후의 천막에서 보냈고, 루브룩과 같은 사자使者도 그곳에서 알현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시기의 기록,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했던 팽대아의 견문록에는, 황후의 천막과는 별개로 황제의 주장(主帳, 장은 천막을 가리킴)이 있고, 그 배후에 가신들의 천막이 늘어서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팽대아의 기록 쪽이 일반적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만화 본편 4권 26막 권두에 그려진 오고타이의 오르두의 조감도는 팽대아와 루브룩의 기록을 반영한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오고타이의 오르두 (4권 26막)

 

 총회의(쿠릴타이) 장면에서도, 황제를 중심으로 동쪽(화면의 오른쪽 위)에 황후들이, 서쪽(왼쪽)에 남성들이 앉아 있습니다.

(2권 13막)

 

 

| 오르두에서 지내는 사람들

 

 여기서는 오르두의 주민들 중 황후들을 다루려고 합니다. 본 칼럼에서는 황제의 아내를 '황후'라 적고 있지만, 당시 몽골어로는 카툰(하툰이라고도 함)이라고 불렀습니다. 카툰이라는 단어는 토욕혼(4~9세기)이나 돌궐(6~8세기) 시기부터 사용되었고, 몽골 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귀족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습니다.

 

 카툰 사이에는 제1, 제2, 제3, 제4와 같이 서열이 존재했습니다. 초대 황제 칭기스의 경우, 제1카툰은 보르테(주치, 차가타이, 오고타이, 툴루이의 어머니), 제2카툰은 쿨란(콜겐의 어머니), 제3카툰은 예수이(칭기스에게 패배한 '타타르'라는 유목집단의 유력자의 딸), 제4카툰은 예수겐(예수이의 여동생)이었습니다. 2대 황제 오고타이의 카툰에 대해서는 역사서마다 다른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 칸국 시기 편찬된 역사서 『집사』나 계도집인 『오족보』에 따르면, 보락친이 제1카툰, 퇴레게네가 제2카툰이라고 적혀 있는 한편, 중국 명나라 시기 편찬된 역사서 『원사』에 다르면 보락친이 제1카툰, 퇴레게네가 제6카툰이라 적혀 있습니다. 몽골 제국에서는 다음 황제의 선출 등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총회의(쿠릴타이)에 카툰이 참석하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황제가 서거하면 그 장례식은 하루식 다른 카툰의 텐트를 돌며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장례식이 끝난 후 후계자 후보의 어머니인 카툰이 궁정을 장악하고 정치를 움직였으며, 이것이 후계자 선정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지위가 높은 몽골 사회의 모습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카툰의 밑에는 신분이 한 단계 낮은 측실도 여럿 있었습니다.

 

 만화 본편의 퇴레게네는 처음에는 제6카툰이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며 제2카툰이 되었습니다. 역사서의 기록을 조합해 만들어진 이야기인 거죠!

(2권 10막)(좌측), (4권 26막)(우측)

 

 참고로 남편이 죽은 뒤 아내가 정치를 움직이는 관습은 몽골 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이어졌습니다. 만화 본편의 무대(최신화 40막 시점에서는 1238년)로부터 700년 뒤의 이야기지만, 1910년 후레(Khüree, 오늘날의 몽골공화국 수도 울란바타르시)를 방문한 러시아 조사단이 정치를 장악한 여성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당시 후레 부근은 북경을 수도로 둔 청나라(1636~1912년)의 통치를 받고 있었고, 기라는 행정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각 기의 지도자는 대체로 칭기스의 피를 이어받은 왕공王公이 맡았으며, 그 지위는 실질적으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혹은 형에서 동생으로 세습되는 형태였습니다. 다시 러시아 조사단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단원들이 러시아 토산물 전시회를 열었을 때, 어떤 기의 왕의 아내가 전시회를 방문했던 모양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어린 나이에 기의 정무를 전부 장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몽골에는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여성이 많지 않았지만, 이 여성은 몽골 문자를 읽고 쓰는 것은 물론이고 청나라의 공용어인 만주어도 유창하게 구사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