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의 자두가르를 더욱 재미있게!』 천막의 자두가르 돌아보기(2)

해당 번역본에는 『천막의 자두가르』 한국 미정발본의 일부 장면과 추후 전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읽지 않는 걸 추천드립니다. 
해당 번역본에 첨부된 미정발본 장면은 칼럼에 수록된 장면'만' 임의로 번역한 것입니다. (문제시 삭제, 정발 후 수정합니다. 미정발분 전부 직접 구매하여 읽고 있습니다.)

 

 

 

 

 

 본 칼럼은 만화 『천막의 자두가르』의 무대가 되는 땅의 역사나 문화를 연재 형식으로 소개하는 칼럼입니다. 

 

 최신화인 38화에서는 몽골제국 황제 오고타이와 아내 퇴레게네의 아들인 귀위크의 성장 과정이 등장했습니다. 귀위크가 4살(1209년)[각주:1]이던 시절의 서하 원정이나, 6살(1211년)이던 시절의 금나라 원정 등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뒤, 마지막으론 37화까지의 무대인 1237년의 킵차크 초원에 돌아왔지요.

귀위크 4세 (1209년) ─ 서하 원정
귀위크 6세 ─ 금나라 원정
귀위크 32세 (1237년) ─ 킵차크 초원

 

이번 칼럼에선 서하와 킵차크 초원에서의 몽골군의 활약을 정리해, 만화 본편을 보충하려 합니다. (금나라 원정에 대한 이야기는 본 칼럼 「천막의 자두가르 돌아보기(1)」의 '금' 항목을 참조해 주세요.)

 

| 귀위크 4세 ─ 1209년 서하 원정

 서하는 1038년경 탕구트의 이원호李元昊가 건국한, 오늘날의 중국 닝샤 후이족 자치구에서부터 간쑤성 남서부, 내몽골자치구 서부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했던 국가입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과 서쪽을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 있어 상업과 농업, 공예 등이 번창했습니다. 몽골이 서하를 원정한 것도 이렇게 풍부한 자원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몽골의 첫 서하 원정은 1205년으로, 그 후 1207년, 1209년, 1218년에도 계속해서 원정군을 보냈고 최종적으론 1227년의 원정으로 서하를 멸망시켰습니다.

칭기스 이전의 몽골 고원과 그 주변 지도

 

 만화 본편 최신화, 38화의 대사 '이제 곧 아버지 오고타이 님이 서하에서 돌아오세요.'에는 1209년의 서하 원정 상황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역사서 『원사』에 따르면, 1209년 원정 중 칭기스 칸이 이끄는 몽골군은 서하의 군세를 격파하고, 수도 흥경부(오늘날의 중국 닝샤 후이족 자치구 인촨시)에 도착했고, 수공水攻[각주:2]을 개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방이 무너져 물이 넘치자 퇴각하였고, 서하의 황제에게 사자를 보냈습니다. 사자를 맞이한 서하의 황제는 자신의 딸을 몽골에게 인질로 바침으로써 화친을 맺으려 했다고 합니다.

 

 화친을 맺고 그 뒤 1210년, 서하는 그동안 오랜 기간 우호 관계였던 금을 다시 침략합니다. 같은 시기 몽골도 금나라를 원정했기에 몽골과 서하는 같은 상대와 싸우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1209년 서하가 몽골과 화친을 맺을 때 서하에게 금을 공격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화친의 조건으로 삼았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1210년부터 서하가 멸망하는 1227년까지 서하는 계속해서 몽골의 침공을 받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 서하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요. 서하의 대몽골 최전선이었던 군사 거점 유적 카라호토 유적(오늘날의 중국 내몽골자치구 아라샨 아이막 어지나기)에서 발견된, 서하어로 된 문서를 통해 당시 서하의 사정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문서에는 1210년 시점에서 이미 수도에 위치한 궁전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마저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서하 황제의 구심력은 덜어졌고, 황제로서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문서를 통해서는 1220년대의 카라호토 부근에서 식량난이 일어났고, 또, 연기를 이용해 먼 곳의 군사 거점과 연락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귀위크 30세 ─ 1235년 오고타이 카안 즉위

1235년,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에서 개최된 쿠릴타이(총회의)에서, 몰가 강 서쪽까지의 원정이 결정되었습니다. 원정처는 약 10년 전(1222년~1223년)에 제베와 수베게데이라는 몽골의 무장들이 침략했던 지역입니다.

 

제베와 수베게데이의 진군로

 

 1219년부터 몽골은 호라즘 샤 왕조를 침공했고, 1220년에는 수도 사마르칸트를 함락시켰으나 왕 무함마드를 놓쳤습니다. 칭기스는 산하의 장군 제베와 수베게데이에게 각각 군세 1만 명을 준 뒤, 무함마드를 추적하도록 합니다. 제베와 수베게데이는 무함마드를 쫓아 니샤푸르로 향했고, 라이, 카즈빈, 타브리즈(엘디구지드 왕조의 수도)에 진군했습니다. 하지만 무함마드를 붙잡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1220년 말, 무함마드는 카스피 해에 위치한 섬에서 병사했습니다. 제베와 수베게데이의 추적 임무는 본래 여기서 끝나야 했으나 두 장군은 계속해서 서쪽으로 진군했습니다. 트빌리시(조지아 왕국의 수도), 타브리즈(2회차), 마라게, 하마단, 아르다빌, 타브리즈(3회 차), 간자, 조지아 왕국(2회 차), 샤마하, 데르벤트를 공격한 뒤 5000m 정도의 산들이 늘어선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 킵차크 초원으로 진출했습니다. 이때, 킵차크 초원에 사는 집단(아스(아란이라고도 함), 레즈기, 체르케스, 킵차크)은 연합하여 몽골에 맞서 싸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제베와 수베게데이는 우선 킵차크와 손을 잡은 제3 부족과의 연합을 깨고, 그 후 킵차크를 공격한다는 책략을 세웠습니다. 공격을 받은 킵차크의 대부분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키예프 루스로 피난했습니다. 킵차크를 받아들인 키예프와 체르니고프, 갈라티는 킵차크와 연합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1223년, 칼카 강(오늘날의 칼치크 강) 유역에서 제베와 수베게데이가 이끄는 몽골군과 대치하게 됩니다. 결과는 몽골군의 승리였습니다.

 

 칼카 강의 전투가 끝난 후, 제베와 수베게데이는 크리미아 반도에 위치한 수닥이라는 도시를 거쳐 불가르를 공격했고, 그 뒤 이틸과 아랄 해의 북쪽을 지나 이르티쉬 강 유역에서 칭기스가 이끄는 본대와 합류해 1225년 몽골 고원으로 귀환합니다. 이 귀환 과정 도중 제베는 사망하고, 또 칭기스 역시 귀환으로부터 2년이 지난 1227년 서하 원정 도중 사망하게 됩니다.

 

 1225년의 귀환으로부터 10년이 지난 1235년, 쿠릴타이에서 다시 원정이 결정됩니다. 그 상황은 만화 본편 32막에도 자세히 그려져 있습니다.

쿠릴타이에서의 결정 (5권 32막)

 

 이 원정군에는 칭기스의 장남 주치의 아들들(바투, 오르다, 베르케, 시반, 탕쿠트), 차남 차가타이의 아들 바이다르와 손자 부리, 삼남 오고타이의 아들들(귀위크, 코단), 사남 툴루이의 아들들(몽케, 부첵), 칭기스의 서자 쿨겐 외에도 수베게데이 등 경험이 풍부한 장군들이 참가했습니다. 원정군은 크게 둘로 나뉘었는데, 바투가 이끄는 군(북정군)은 불가르를, 귀위크와 몽케가 이끄는 군(남정군)은 킵차크, 모르도바, 마리를 목표로 진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정군은 1236년부터 1237년까지의 시간을 들여 불가르를 정복했고, 남정군 역시 1237년 말까지 모르도바와 마리를 거의 정복해 킵차크와 아스를 서쪽으로 달아나게 만들었습니다.

 

 최신화 38막의 무대는 딱 이 즈음의 시기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이후 원정이 어떻게 되는가────를 다루는 것은 만화의 스포일러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칼럼은 여기까지만 적도록 하겠습니다. 귀위크 일행은, 앞으로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부디, 다음 화가 업로드되면 확인해 주세요.

 

 

 

  1. 몽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세는 나이를 사용함(역주) [본문으로]
  2. 급수로를 끊거나, 강물로 침수시켜 적의 성城을 공격하는 것, 또는 그런 방법. (역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