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번역본에는 『천막의 자두가르』 한국 미정발본의 일부 장면과 추후 전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읽지 않는 걸 추천드립니다.
본 칼럼은 만화 『천막의 자두가르』의 무대가 되는 땅의 역사나 문화를 연재 형식으로 소개하는 칼럼입니다. 최신화인 35막에서는 몽골 제국의 복잡한 정쟁이 또렷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매력적인 정치극에는 다양한 등장인물의 얽히고설킨 관계성이 따라오는 법… 이기에 이번에서는 만화 본편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인물 관계도와, 역사서나 연구 등을 바탕으로 한 간단한 인물 사전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독자 여러분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캐릭터 관계도 (제35막의 무대가 되는 1236년 시점까지의 상태)

| 인물사전 (가나다순, 제35막의 무대가 되는 1236년 시점까지의 상태)
귀위크 (구육)
황제 오고타이와 오고타이의 아내 퇴레게네의 아들입니다. 몽골제국 서방 원정군의 일원으로서 원정 중입니다.
다이르 우순 (다이르 오손)
우하즈 메르키트 씨족의 씨족장입니다. 딸 쿨란을 칭기즈와 결혼시켰으나, 그 후 칭기즈에게 반란을 일으켰으나 패배하고 사망합니다.
모게 (무게)
베크린(메크린이라고도 함) 출신. 베크린이 칭기즈 산하에 들어왔을 때, 전 황제 칭기즈와 결혼했습니다. 칭기즈 사후 차가타이가 모게와 결혼하길 원했으나 오고타이와 결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차가타이나 오고타이는 칭기즈의 아내였던 모게의 수양아들입니다. 당시 몽골에는 남편이 죽은 후 수양아들과 결혼하는 재혼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몽케 (멍케, 뭉케)
황제 오고타이의 조카(오고타이의 동생 툴루이와 툴루이의 아내 소르칵타니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입니다. 몽골제국 서방 원정군의 일원으로서 원정 중입니다.
바투 (바토)
황제 오고타이의 조카(오고타이의 큰형 주치의 장남)으로 주치 가의 당주입니다. 오고타이의 명령으로 몽골제국 서방 원정군의 총사령관을 맡게 되었습니다.
보락친
황제 오고타이의 아내 중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카툰으로, 도교 경전의 편찬을 지시했던 인물입니다. 어디 출신인지, 아이가 있었는지와 같은 자세한 정보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삼카 바하투르 (사천택)
진정(현재 중국 허베이성 부근) 부근에서 활약했던 인물입니다. 본래 금나라를 모시고 있었으나 1211년부터 칭기즈가 이끄는 몽골제국군의 침공을 받고 투항하여 몽골제국 사람이 되었습니다. 1236년 삼카 바하투르가 본거지로 삼았던 진정은 툴루이 가의 영지였습니다. 이후 삼카 바하투르는 소르칵타니 밑에서 진정 현지의 행정장관을 맡게 됩니다. 1235년부터 남송 원정에 참가했습니다.
소르칵타니 (소르칵타니 베키)
케레이트 출신으로, 경교(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오고타이의 동생 툴루이의 아내로, 네 아들(장남 몽케, 차남 쿠빌라이, 삼남 훌라구, 사남 아리크 부카)의 어머니입니다. 1232년 툴루이가 죽은 후 오고타이는 소르칵타니를 자신의 아들 귀위크와 재혼시키려 했습니다. 소르칵타니는 이 혼담을 거절하고 정면대결을 피해 오고타이 가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시기 쿠투쿠 (시기 코토코/단사관)
어릴 적 칭기즈가 주워 양자로 길러졌고, 1206년부터 단사관(자루가치)을 맡은 인물입니다. 단사관은 제국의 백성을 왕가나 공신에게 분배하고, 분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의 의견을 듣고, 분배가 이뤄진 내용을 푸른 책에 기록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칭기즈가 죽은 뒤 새 황제 오고타이 밑에서 단사관으로서 일했고, 1234년 몽골제국이 금나라를 멸망시킨 뒤 옛 금나라 영토의 호적부를 작성하고 이에 기초해 백성과 토지를 분배했습니다.
아르군 (아르군 아카)
오이라트 출신. 기근이 든 해, 곤궁했던 아버지가 소의 허벅지살 하나 가격으로 황제 오고타이의 부육계 이르케에게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 후 이르케의 아들 이르치다이가 오고타이의 야간 경호(케시크의 숙위)를 맡게 되었을 때, 아르군도 종자로서 이르치다이와 동행했습니다. 이때 아르군의 재능이 드러나 요직에 발탁되었습니다.
오고타이 (어거데이, 오고데이, 외게데이, 우구데이)
몽골제국 제2대 황제로, 제1대 황제 칭기즈의 삼남입니다. 이란 총독부를 설립하고, 금나라나 남송, 서방을 원정했으며, 수도 카라코룸을 건설하고 역참제를 정비하는 등의 업적을 세웠습니다.
역사서 『집사』는 관대함, 특히 이슬람 신앙을 가진 상인들을 대하는 태도를 강조하여 오고타이의 인품을 서술했습니다. 실제로 오고타이는 상인들에게 관대했으며, 상품을 고가로 사들여 상인이 지속적으로 왕래하게 함으로써 많은 서아시아산 상품을 손에 넣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개중에서도 특히 면직물이나 보석, 말은 궁정의 의식을 장식하거나 가신에게 하사하는 데에 꼭 필요한 물품이었습니다.
오르다
황제 오고타이의 조카(오고타이의 큰형 주치의 장남). 몽골제국 서방 원정군의 일원으로서 원정 중입니다.
이르치다이
잘라이르 출신. 황제 오고타이의 부육계 이르케의 아들로, 오고타이의 케시크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케시크를 맡게 되었을 때, 노예 아르군과 동행했습니다. 이르케의 아내 중 한명과 불륜 관계였던 과거가 있습니다.
이르케 (이르게, 일루게, 일루게이)
잘라이르 출신. 황제 오고타이의 부육계(왕부, 아타벡, 사부라고도 함)로서 오고타이가 어릴 때부터 오고타이의 양육이나 보좌 등을 담당했던 인물입니다. 아들 이르치다이를 오고타이의 케시크 자리에 넣었고, 그때 노예 아르군도 종자로서 동행하게 했습니다.
주치 (조치)
황제 오고타이의 큰형입니다. 아버지이자 전 황제인 칭기즈의 명령을 받아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지만, 1225년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하고 맙니다.
차가타이 (차가다이, 차아다이)
황제 오고타이의 작은형으로, 오고타이의 신뢰가 두터운 인물입니다. 또, 초대 황제 칭기즈가 남긴 법령을 철저히 지켜 법을 어기는 행위(예를 들어 이슬람의 목욕 관습이나 가축 도살 방법 등의 행위)를 엄격하게 잡아들였다고 합니다.
친카이
전 황제 칭기즈가 즉위하기 전부터 제국에서 일한 고참 가신입니다. 1212년에는 칭기즈의 명령으로 둔전1과 도시(친카이 성)를 건설했습니다. 친카이 성은 그 후 원나라 시대에도 기능했다고 합니다. 현재 몽골 서부 고비알타이현에 남아있는 유적이 친카이 성의 유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칭기즈 사후 황제로 즉위한 오고타이 밑에서 대서기관(우르구 비칙치)으로서 일했습니다. 서기는 단순히 문서를 작성하는 일뿐만이 아니라 국새를 봉인하거나, 궁정을 방문한 상인이나 외교사절을 대응하는 일 등 다양한 일을 맡았습니다. 서기는 제국 전체를 섬긴다기보단 황제 개인을 섬기는 가신이었기에 주군이 죽으면 그 지위도 흔들렸습니다. 경교(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카다크 (카닥)
나이만 출신. 황제 오고타이의 장남 귀위크의 부육계(왕부, 아타벡, 사부라고도 함)로서 귀위크가 어릴 때부터 귀위크의 양육이나 보좌 등을 담당했던 인물입니다. 경교(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코단 (쿠덴)
황제 오고타이의 아들입니다. 남송 원정군의 일원으로서 원정 중입니다.
코르구즈 (쿠르구즈)
위구르인.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으나, 문자를 열심히 익혀 주치(당시 황제였던 칭기즈의 장남)에게 그 능력을 인정받아 주치 밑에서 일했습니다. 그 후, 황제 오고타이의 명령으로 설치한 이란 총독부의 서기로 임명되어, 주치 가의 이익을 대표해 일했습니다. 초대 총독 친 테무르의 신뢰가 두터워 1235년경엔 궁정으로 보내는 사절단 중 한 명으로 발탁되었고 뛰어난 웅변 실력으로 오고타이를 기쁘게 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때 코르구즈는 대서기관 친카이를 알게 되었고, 친카이의 비호를 얻게 됩니다. 사절단이 총독부로 돌아가던 중 초대 총독 친 테무르가 사망해 후임으로 노살이라는 인물이 임명되었습니다. 하지만 노살은 나이가 많았던지라 실권은 코르구즈에게로 옮겨갔습니다.
쾰겐 (쿨겐)
전 황제 칭기즈와 칭기즈의 부인 중 하나인 쿨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몽골제국 서방 원정군의 일원으로서 원정 중입니다.
쿠빌라이
황제 오고타이의 조카(오고타이의 동생 툴루이와 툴루이의 아내 소르칵타니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입니다.
쿠추
황제 오고타이의 아들입니다. 차기 황제 후보로 발탁되어 남송 원정의 총사령관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원정 도중인 1236년 사망했습니다.
쿨란
우하즈 메르키트 씨족의 씨족장 다이르 우순의 딸입니다. 전 황제 칭기즈와 결혼해 쾰겐이라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키르기스타니
황제 오고타이의 부인 중 한 명입니다. 전 황제인 칭기즈의 아내였으나 칭기즈 사후 오고타이와 재혼했고, 오고타이와의 사이에서 아들 코단을 얻었다고 합니다. 오고타이는 칭기즈의 아내였던 키르기스타니의 수양아들입니다. 당시 몽골에는 남편이 죽은 후 수양아들과 결혼하는 재혼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화 본편의 키르기스타니는 오고타이와 재혼한 것이 아닌, 처음부터 오고타이와 결혼했다는 설정입니다. 역사 속 키르기스타니와는 다른 인물이지만 그 이름을 빌린 캐릭터(오고타이의 부인 중 한 명이자 코단의 친어머니인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테무게
전 황제 칭기즈의 막냇동생입니다. 1236년엔 형들이 전부 죽었기 때문에, 몽골 왕족의 큰 어른 위치였습니다. 자식이 무척 많아 아들이 80명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퇴레게네 (투레게네)
나이만 출신. 우하즈 메르키트 씨족의 씨족장 다이르 우순의 아내였으나, 다이르가 칭기즈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뒤 포로가 되어 칭기즈의 아들 오고타이에게 주어졌습니다. 오고타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 중에서는 귀위크가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툴루이 (톨로이)
황제 오고타이의 동생입니다. 오고타이가 주도한 금나라 원정에서 가장 강력한 적을 쓰러뜨리는 등 큰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1232년 돌연 사망하고 맙니다. 『집사』, 『원사』, 『세계정복자의 역사』 등에 툴루이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집사』와 『원사』에는 툴루이가 오고타이 대신 죽었다고 적혀 있는 반면, 『세계정복자의 역사』에는 단순히 과음으로 사망했다고 적혀 있어 툴루이의 죽음에 대한 진상은 수수께끼에 쌓여 있습니다.
파티마
마쉬하드 출신. 마쉬하드는 현재 이란 동부에 위치한 도시인데, 만화 초반의 무대가 되는 도시 투스와 남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마쉬하드를 침략한 몽골제국군의 포로가 되어 몽골 고원의 제국 본거지로 연행되었고, 그 뒤 황제 오고타이의 아내 중 하나인 퇴레게네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훌라구 (훌레구)
황제 오고타이의 조카(오고타이의 동생 툴루이와 툴루이의 아내 소르칵타니 사이에서 태어난 삼남)입니다.
- 변경이나 군사 요지에 주둔한 군대의 군량을 마련하기 위하여 설치한 토지. 군인이 직접 경작하는 경우와 농민에게 경작시켜 수확량의 일부를 거두어 가는 두 가지 경우가 있었음. "둔전", 표준국어대사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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